내용
정신건강의학과를 지원한 인턴 선생님을 면접하는 자리에서 정신건강의학과에 지원한 이유를 물으니, 모두 환자와 의사소통을 많이 할 수 있어서라고 답하였다. 이어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 무엇이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인지 물으니 한결같이 공감이라고 하였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문득 ‘공감이 뭐지? 나는 대화를 할 때 공감을 잘 하나?’라는 화두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 의문이 다시 살아난 것은 전문의가 되어 사회신경과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공감에 대한 기능적 뇌영상 연구에 관한 논문들을 주로 읽었다. 손이 못이나 유리에 찔리거나 문틈에 끼이는 장면을 보여 주는 동안 시행한 기능적 뇌영상 연구에서 전측섬피질(anterior insula)과 전측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가장 많이 활성화되었다. 그럼, 공감은 타고 나는 것일까? 길러지는 것일까?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자동적이고 반사적인 형태의 공감은 태생적인 반면, 감정전염과 모방은 신생아 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만 1~2세를 지나면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식이 발달하면 공감은 좀 더 의식적인 형태로 변하고, 만 3~4세를 거치면서 마음 이론, 감정조절, 언어 등이 발달하면 공감이 인지적인 형태로 발전한다고 하였다. 아이도 공감을 할 줄 아는데, 그렇다면 동물도 공감하는 능력이 있을까? 인간을 비롯한 모든 포유류가 추구(seeking), 분노(rage), 공포(fear), 성욕(lust), 양육(care), 공황(panic), 놀이(play) 등과 같은 기본적인 감정회로(basic emotional circuits)를 공유하는데 이 중 양육회로가 공감의 토대가 된다고 하였다. 나아가 양육 과정 중에 발달한 공감이 타인을 돕는 이타적 행위의 토대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감과 연관된 뇌영상 연구, 소아발달 연구, 영장류 연구를 모두 읽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에 버거웠다. ‘누군가 이 방대한 연구를 정리한 사람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던 중 발견한 것이 이 책, ‘Empathy: From Bench to Bedside’였다. 차례를 보니 다학제적 관점에서 공감을 다양한 측면으로 기술하고 있어서 당장 책을 주문하였다. 이 책을 일독하는 동안 ‘공감이 뭐지?’라는 첫 번째 화두는 서서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화를 할 때 공감을 잘 하고 있나?’라는 두 번째 화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이 책과 같은 이론적인 서적을 읽었다고 바로 실천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감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몸에 녹아들도록 하는 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정신치료 및 상담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분이 이 책을 통해 공감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나아가 환자 및 내담자에게 공감하는 데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다.